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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운영의 마술사 T1의 주장- 박태민(사진추가)

2008.08.22

주장의 자리는 어려워요……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던 2008, 신한은행 프로리그 승리의 깃발은 결국 2연패의 쾌거를 이룩한 삼성전자 칸에게 돌아갔고 각축전의 현장에서 일찍부터 우승후보로 예견되었던 T112개 팀 중 2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정기시즌을 마무리 했다.

 삼성전자 칸과 온게임넷 스파키즈가 광안리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향해 치열하게 스파크를 내뿜는 동안 T1팀은 시즌 이후 가장 긴 휴가에 들어갔다. 그 동안 쌓여있던 피곤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름휴가는 프로리그를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던 선수들에겐 아쉬움을 동반한 휴가기간이었다. 그리고 휴가 후 이어지는 개인리그 예선전과 이벤트 경기 준비로 선수들은 언제 숨을 돌렸냐는 듯 재 가동을 시작했고 시즌 동안 가장 아쉬움이 컸을 법한 박태민 주장의 속사정을 들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를 만난 날은 마침 경남-STX컵 마스터즈 2008 준플레이오프 경기가 있던 날로 연습실에 남아있던 선수들도 T1 로스터들을 응원하기 위해 연습을 잠시 멈추고 한자리에 모인 상태였다. 우린 선수들의 응원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편안한 차림으로 동행한 그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시즌이 끝난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개인리그 끝나고 나서 휴가 받고 9일 정도 쉬다가 왔어요. 지금은 차기 시즌 준비하면서 틈틈이 운동을 하고 있어요. 리그 시작하기 전 체력을 길러놔야 하거든요.

 휴가는 어떻게 보냈어요?

 거의 집에서 쉬다가 휴가 막바지가 돼서야 동해로 떠났어요. 짧은 기간이라 맛있는 거나

먹고 오자는 취지에서 친구들과 간 건데 숙박시설도 좋았고 바비큐 파티도 하고 회도 먹으면서 알차게 보냈어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선배, 친구들도 만나 회포도 풀었어요.

 주장으로서의 적응은 다 된 것 같아요?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고 맏형 겸 주장이라 그런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의 요환이 형처럼 후배 선수들이 실수를 해도 터치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주장이 되니까 다르더라고요. 일단 선수들의 단점이 하나 둘씩 보이게 되고 선수들이 형으로서 얘기하는 것과 주장으로서 얘기하는 걸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 좀 힘들어요. 주장이란 자리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위치더라고요.

 

 운영의 마술사라 불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지만 올드게이머로서 겪게 되는 난항으로 인해 프로리그 기간 동안 그는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출전기회를 내줄 수 밖에 없었다.

 

리그를 치르는 동안 출전기회가 적었는데 아쉽지 않았어요?

 물론 아쉬웠죠.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경기에 출전 못하는 것과 같은 거잖아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벤치에 앉아있는 횟수가 늘어가니까 적응이 안됐어요. 그래서 만회해보고자 혼자 맵을 골라 연습도 해봤지만 공군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아 출전기회가 다시 줄어들었어요. 물론 우리 팀이 이번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두어서 좋긴 하지만 제가 팀에게 보탬이 되는 부분이 없으면 주장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선수로서의 역할도 못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두 코치님 빼고 올드게이머는 저 혼자라서 그런지 외롭고 힘든 부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게이머로서 평가가 저하되는 거예요. 게임을 오래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제 꿈이 사라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욕심을 내고 있고 지금은 꿈을 포기하려고 했던 사실조차 후회가 돼요.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자신을 외톨이라고 표현했다. 화려했던 전성기도 지나가고 팀에서도 어느새 맏형이 되어 후배 선수들을 아우르는 위치가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고 뛰어난 실력을 가진 어린 선수들은 그가 설 자리를 좁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외로움은 커져만 갔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꿈을 잃은 올드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섬세한 운영의 마술사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이슈가 될만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네티즌들은 종종 프로게이머들의 특징이나 버릇들을 화두 위에 올려놓기도 하는데 그 중엔 그의 경기 전 긴 장비 세팅을 두고 붙여진 별명인 세팅저그, 세팅술사도 있다. 이 같은 별명이 생긴 배경에는 그의 꼼꼼한 성격이 한 몫을 하고 있는데 사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준비된 카메라의 후레쉬 기능을 이리저리 살피며 꼼꼼한 성격임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그이기에 어쩌면 세팅과 관련된 별명은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그는 단지 꼼꼼하고 섬세하기만 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선수들은 여자친구에 대한 얘기하기를 꺼려하는데 박태민 선수는 어떤 편이에요?

 전 전혀 반대예요. 오히려 숨기는 게 여자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예전부터 너무 광고하듯이 얘기를 하고 다녀서 지금은 좀 자제하고 있어요.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노래는 뭐예요?

 mc몽의 미치겠어란 노래를 즐겨 듣고 있어요. 전 원래 힙합보단 부르기 쉬운 R&B를 좋아하는데 이 노래는 즉흥 라이브 할 때 넣는 랩 애드립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즐겨 듣게 됐어요.

 이번 프로리그 결승전에서 이성은 선수가 보여준 세레머니를 혹시 봤어요? 봤다면 그와 같은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세레머니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얘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어요. 전 세레머니가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단지 이번에 경기 출전기회가 적어서 그렇지 저도 여건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멋진 세레머니를 보여드릴 마음과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어요.

 팀 내에서 성격이 가장 잘 맞는 선수는 누구예요?

 이건준 선수요.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친해요. 우리 둘 다 장난을 잘 치는 성격인데 그런 점에 있어서 잘 맞는 것 같아요.

 박용욱 코치 말로는 저그 선수들이 말도 많고 활달한 편이라는데 그 말이 맞나요?

 한 마디로 정의하면 저그는 저그스럽고 테란은 테란스럽고 토스는 토스스러워요. 저그 선수들은 운동을 잘하면서 활달한 편이고 토스 같은 경우는 중립적이면서도 창의력이 뛰어나요. 박코치님 말처럼 종족에 맞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벙키의 인기 예상했나요?

 전혀 예상 못했어요. 벙키 같은 경우는 물론 제작해주신 분들이 귀엽게 잘 만들어주신 것도 있지만 그보다 벙키 탈을 쓴 분이 정말 잘해주었기 때문에 하나의 성공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한번 써봤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진짜 벙키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주장하는 편인 것 같은데 그런 당당함도 이 사람 앞에서는 변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여자친구겠죠. 저랑은 성격이 반대라서 트러블이 많았어요. 전 고집이 세고 주장이 강한 반면 여자친구는 반대입장에 서면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넓게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저도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타협하는 법을 배웠어요.

 T1의 선수들의 비밀 하나만 공개해 주세요.

 오충훈 선수가 귀엽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남성답고 엉뚱한 편이에요. 그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연습실에서 숙소까지 항상 걸어 다닐 정도로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남들은 야식으로 치킨이나 피자를 먹는데 혼자 과일을 먹을 정도로 몸 생각을 많이 해요. 어린 친구가 그러니까 신기하더라고요.

 나도현 선수와의 경기가 화제가 됐었는데 당시 상황 좀 얘기해주세요.

 아시다시피 나도현 선수가 경기도중 쓰러졌잖아요. 그럴 경우 실권 패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경기를 다음으로 미뤘어요. 재경기에서 제가 졌지만 선택에 있어선 후회하지 않아요.

 배우 장동건과의 에피소드도 있다고 하던데요……”

 그때가 워크샵을 다녀온 날이었는데 연습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장동건 형을 만났어요. 그 건물 안에 주진모씨가 살고 있거든요. 장동건 형과 공형진씨가 같이 있었는데 장동건 형이 먼저 알아봐 주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데 스타의식을 전혀 하지 않고 매너 있게 대해주시더라고요. 평소에 스타를 즐겨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언제 한번 게임같이 하자고 말했더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멋진 분인 것 같아요.

 그 동안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반복되거나 뻔한 질문들이 있을 때도 있잖아요. 만약에 본인이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된다면 어떤 질문을 할 것 같아요?

 잘하는 게이머들이나 박태환 선수 같은 스포츠선수들을 인터뷰한다면 성공비결을 물어보고 싶어요. 그들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성공하는 습관일 수도 있거든요.

 

 그는 인터뷰 중에도 카메라와 적잖은 씨름을 하며 기능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몰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프로게이머이자 호기심 많은 20대 청년이었다. 그리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알며 장문 대답으로 인터뷰의 맛을 살리는 베테랑급 선수였다.

 

 

과거에는 즐겼고, 현재는 게임과 싸우고, 미래는 게임과 친구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중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피씨방을 전전하던 그는 별다른 꿈을 갖지 않은 채 방황을 했다. 그런 그에게 게임은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픈 마음을 충족시키며 그를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다. 그는 2002 GO 팀에서 본격적인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다가 3년 뒤인 2005년에 같은 팀원인 전상욱 선수와 함께 T1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임요환, 최연성, 박용욱과 함께 T1의 핵심 선수로 주목을 받으며 프로게이머로서 전성기 시절을 보내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시련과 아픔을 동반한 슬럼프는 찾아왔고 운영의 마술사라 불릴 만큼 게이머로서의 저력을 보여주던 그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성기 때 자만심이 생길 법도 한데 어땠어요?

자만심 보다는 자신감이죠.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게임을 통해서도 나타났던 것 같아요. 전성기 때도 굉장히 큰 패배를 맛보았기 때문에 자만심은 없었고 대신 지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했어요. 승부욕이나 근성만큼은 지금도 자신 있어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는 편이에요?

슬럼프를 겪는다고 해서 뭔가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것보다 원래의 페이스대로 움직이는 게 슬럼프를 더 키우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고 있어요.

프로게이머의 능력은 나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해요?

단지 불리한 부분이 있을 뿐 나이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나이가 들수록 경조사에 참여할 일도 많아지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강해지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보단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신경 쓸 일이 더 많아 집중도가 떨어지겠죠. 그래도 마인드적인 부분에서만 잘 컨트롤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박재혁, 윤종민 선수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저그 라인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평가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제가 부진해서 후배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게 미안할 뿐이에요. 아직 부족한 점도 많고 보여드린 것도 많지 않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또 가능성도 무한한 선수들이니까 끝까지 응원해주고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

조금 있으면 임요환 선수가 돌아오는데 팀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 것 같아요?

요환이 형은 e스포츠의 상징적 인물이면서 우리를 대변해 주고 의지할 수 있는 힘있는 선수잖아요. 또 워낙 팀 규율이나 생활습관이 바른 스타일이라 어린 선수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형이 오면 팀이 한층 밝아질 것 같아요. 올드게이머 슬럼프에 빠지지 않고 마인드컨트롤을 잘 한다면 좋은 결과도 있을 것 같아요.

현재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 뭐예요?

아무래도 진로문제겠죠.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기라서 마음을 굳게 다지고 중간에 흐트러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시점에서 새로운 목표를 잡는다면?

지금 시점에선 장기간 지속됐던 성적부진을 이겨내고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더 잘해내는 거죠.

은퇴 후 계획은요?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e스포츠 계통의 사람들과 인맥을 형성하게 된 것이 이점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그래도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기 마련이니까 준비를 많이 해야겠죠.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긴 하지만 아직까진 자신이 없어요. 현실적으로는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맞겠죠.

지금 온 국민이 올림픽에 빠져있는데 스타와 프로게이머들도 국민들로부터 주목 받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게임 하는 모습 이외의 외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면 가능할거라 생각해요.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스타 2가 성공하느냐인데 그게 잘된다면 e스포츠의 발전은 가능하다 생각해요. 언젠가는 국민들을 열광시켜줄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할지도 모르죠.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프로게이머나 스타크래프트의 정의를 내린다면?

스타는 심리전이다, 프로게이머는 힘들다 정도? 정의 내리기가 참 어렵네요.

 

고민 끝에 내린 대답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운영의 마술사는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질문에 대한 답을 희미하게 마무리 지었다. 그 어디에도 정답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지난 프로게이머의 생활을 멋지게 회고하는 듯한 표현을 하고 싶었던 듯 했다. 그는 언제나 빛나고 싶은 올드 게이머였다.

 

마지막으로 프로게이머로서 지나온 삶을 과거, 현재, 미래로 평가해본다면요?

과거에는 게임을 즐기면서 했었고 현재는 게임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고…….미래는……아마도 게임과 친구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말을 마친 그는 올드게이머로서는 보기 드문 쑥스러움이 강조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나이 이제 스물 다섯,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청년 박태민은 히딩크처럼 아직 배가 고프다. 그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는 주장과 맏형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나 그것만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부활을 꿈꾸며 다시 날개를 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 꿈은 단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만이 아닌 프로게이머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이 걸려있기 문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게이머로 살아온 날보다 인간 박태민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지만 인생 한 켠에 남을 가장 멋진 추억은 지금 그가 앉아있는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르막길의 단맛과 내리막길의 쓴맛을 고루 체험한 T1 주장 박태민이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