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1 박용욱코치를 만나다 Ⅰ - 동행

2008.07.15

1편- 동행
 

S#1. 연습실 
  박용욱 코치를 만나기 위해 T1연습실로 도착한 시간이 10시 40분. 연습시작 시간을 10분이나 넘긴 상황에서 숙소부터 조회까지 이어지는 황금코스는 당연히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전날 늦게 잠든 것을 후회하며 조용히 연습실 문을 들어서는데 박용운 감독이 제일 먼저 맞아 주었다.
  르까프 전을 하루 앞둔 선수들은 역시 막바지 연습에 총력을 기울이며 맹렬하게 컴퓨터 앞을 지켰다. 오늘의 주인공 박용욱 코치의 책상은 햇빛이 잘 드는 창가와 도재욱 선수자리 중간 지점에 있었는데 도재욱 선수와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갑작스런 방문에 당황한 새색시처럼 부랴부랴 책상을 치우는 박코치. 그러나 그보다 컴퓨터 배경화면에 깔린 배우 신민아 사진에 더 시선이 갔다. 스물 여섯 아직 팔팔한 청춘의 그는 그녀가 이상형인 듯 보였는데 훨씬 어린 선수들의 취향은 역시 대세인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여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 다음으로 시선이 향한 건 책상 한 켠에 붙어있는 최태원 회장의 인터뷰 기사였다. ‘리더의 5가지 역할 스포츠에 다 있다’ 란 제목의 기사로 그의 일과 역할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이었다. T1의 코치로서 또는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스타리그 4강전이 있는 그날도 그는 도재욱 선수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S#2. OO 중국집 
  오전일과가 끝나는 12시는 선수들의 점심시간이다. 그들은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숙소의 편안한 식사를 포기하고 연습실 근처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날의 점심메뉴는 중국음식. 아담한 규모의 식당은 선수들로 금새 채워졌고 그들은 익숙한 듯 메뉴판도 보지 않고 음식을 주문했다.
  박코치가 선택한 메뉴 자장밥은 최코치의 마파두부밥 보다 일찍 나왔다. 고새를 못 참고 박코치의 자장밥을 뺏어먹는 최코치, 이를 계기로 둘은 잠시 옥신각신했다. 그런 후 박코치는 자신의 음식철학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처럼 그는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최코치는 결혼하면 달라질 거라면서 결혼에 대한 그의 환상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어 최코치의 마파두부밥이 나왔고 그들의 음식철학 강의는 잠깐의 휴식타임을 갖게 된다. 잠시 뒤 식사를 마친 그가 주문한 음식을 지루한 듯 기다리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댁이 어디세요?”
“도봉동이에요.”
라고 하자 그는
“서울역에서 11시 방향인가요?”
라고 되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이번엔 최코치가
 “도봉이면 1시 방향 아닌가?”
그들의 대화 내용을 도통 알 길이 없어 물었다.
 “그런데 왜 기준이 서울역이에요?”
그러자 그가 답했다.
“지방 사람들은 원래 서울역을 기준으로 삼아요.”

  지방사람이라는 표현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으로 무장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그를 향한 긴장감과 벽은 허물어져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즐거운 수다를 이어가며 점심식사를 마쳤다.

S#3.  경기장 가는 길 
  용산 경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박용욱 코치는 이런저런 얘기들로 도재욱 선수의 긴장을 풀어준다. 특히 종족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이야기에 벤을 탄 일행들은 100퍼센트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테란 아이들은 움직이는 걸 싫어해요. 그리고 대부분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저그 쪽은 대체적으로 말이 많고 활동적이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잘 뭉치는 스타일이고 토스아이들 같은 경우는 재미있고 신기한 것에 관심을 갖는 호기심이 강한 스타일이라고 보면 돼요.”

  마침 원더걸스의 CD를 찬찬히 살피며 듣고 있는 도재욱 선수를 보니 그의 분석이 정확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는 동안 그는 피곤함이 밀려오는지 작은 모니터에서 나오는 뉴스에 집중하며 잠시 침묵했다. 잠시 뒤 오토바이 한 대가 복잡한 강남 도로를 지나가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토바이 타고 부산 내려가면 좋겠다.”

 그러자 그의 단꿈을 깨는 강한 한마디가 T1 매니저의 입에서 들려온다.

 “그러면 바퀴가 타고 엔진이 터질 거예요 아마.”
  기분 좋은 상상에 현실이란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고향에 관한 질문을 하자 어린 시절 추억담들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꼭 선수들을 데리고 자신이 놀던 곳에 가서 고기도 잡고 족구도 할 것이라는 계획을 잡는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그는 선수 중에 누굴 좋아하냐는 질문을 갑작스럽게 던졌고 난 도재욱 선수를 좋아하지만 나이가 많아 좋아하는 것이 민망하다 했다. 그러자 그는

송혜교 나오는 드라마 있죠? 거기 보면 송혜교가 수녀로 나오는데 죄수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에서 한 죄수가 송혜교에게 이렇게 물어요. <수녀님, 수녀님을 좋아해도 됩니까? > 라고요. 그러니까 극중 송혜교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되고 안 되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그 마음에 책임질 수 없을 까봐 죄송할 뿐이죠> 라고 대답해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어떤 결론을 내주는 것 없이 끝이 났고 뒤는 상상에 맡겨야만 했다. 그래도 위로 치고는 꽤 감성적이며 명쾌했고 또한 그만의 사랑 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S#4. 용산 상설경기장 
  경기장에 도착하자 도재욱 선수를 기다리고 있던 소녀 팬들이 준비한 선물을 수줍게 전해준다. 그것은 콜라를 마셔야 경기가 잘 풀리는 도재욱 선수의 징크스에 대한 배려로 준비된 얼음콜라 박스였다. 선물엔 결승진출을 염원하는 팬의 메시지도 함께 담겨 있었는데 경기 내내 도재욱 선수의 갈증과 심리적 불안감을 해결할 오아시스 같은 선물이었다.
일행들은 대기실로 향하는 길에 메이컵 중인 엄재경 해설자를 만난다.

 엄재경 해설자: “패 승승승 생각하고 있니?”
 박코치: “승승승이죠.”

  그날 엄재경 해설자는 도재욱 선수의 승리를 예측했고 그 역시 정말 승승승의 결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경기 전 도재욱 선수는 원더걸스가 결승전 축하무대를 하러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내심 좋아하며 필승의 각오를 더 다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도재욱 선수에게 잘하고 오라는 말 이외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담담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경기를 치르는 도재욱 선수보다 더 긴장했다.
  그러나 초반 1,2세트를 내리진 도재욱 선수. 대기실과 부스 안은 불안한 출발로 인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물량토스의 진가는 3세트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1,2세트의 참담한 패배를 만회하듯 도재욱 선수는 3,4 세트를 이기며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5세트를 승리로 마무리하며 결승진출에 성공했다. 그의 마음을 애타게 만드는 역전승이었지만 프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결승진출의 꿈을 이룬 도재욱 선수는 꼭 이기겠다는 그와의 약속을 지켰다. 짜릿하고 감격적인 순간 함께 한 선배 토스와 후배 토스는 그날, 선수와 지도자로서의 꿈을 서로를 통해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