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T1 박용운 감독을 만나다.

2008.07.07


T1
을 이끄는 힘, 박용운 감독을 만나다

  프로리그가 중반쯤 접어들 무렵 역삼동 T1의 연습실에서 e스포츠의 숨은 보물 박용운 감독을 만났다. 날렵한 강타의 이목구비와 비슷한 그는 사람들에게 냉혈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인상과는 다른 순수함이 느껴졌다.


  T1
의 감독으로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어느덧 100일이 다 되어 가는 박용운 감독.

그간의 행보에 대한 얘기는 빠질 수 없는 소재였다. 부임 후 내부평가를 해본 결과 그는 10위권 안을 바라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선수들은 생각한 것 이상의 실력이었지만 문제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스토브리그와 프로리그를 거치고 마인드 강화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은 점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팀의 총 책임자로서는 처음 리그를 치르는 거라 부담감이 있었어요. 선수들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아요. 억울하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지만 독하게 마음 먹고 다음 경기를 준비했어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선수들은 초반의 긴장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경기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그의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부각시켰다 


   “초반에는 선수들이 적응이 덜된 상태였고 시즌이 점점 지나면서 긴장감도 풀어지고 하나가 되는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연패를 하면할수록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더 불타올랐고 선수들과 코칭스탭의 커뮤니케이션의 발전도 연승의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인 엔트리 구성은 팬들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이며 상대팀과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핵심포인트 이기도 하다. 간혹 그는 예상을 깨는 엔트리 구성으로 팬들과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약한 선수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기용하는 편이에요. 가능성이 보이면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되도록이면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모험일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른 팀과의 차이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프로리그 기간 동안 관계자들과 팬들의 우려와 같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신대로 팀을 이끌어 나갔다. 누구는 모험이라고 말하는 것을 그는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다.

 

Life style
  올해로 서른 두 살인 그는 일찍 결혼 했으면 아이 서넛은 낳아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나이지만 아직 이루고자 할 꿈이 있기에 쉽게 결혼계획을 잡을 수 없다. 게임에 청춘을 바쳤던 20대도 도미노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지나간 세월보다 더 안타까운 건 누군가를 사랑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 그러나 많지 않은 연애경험이라 해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껏 2번의 사랑을 경험했다. 사랑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겪는 이별의 아픔을 5년 동안 앓았던 그는 사랑에 있어선 순정파였다. 이제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도 잘 챙겨주지 못할 거란 생각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박용운 감독. 아직 제짝을 만나지 못해서일까, 쉬는 날도 게임 아니면 독서를 한다는 그의 말에는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도 이 여자다 싶으면 놓치지 않을 자신감은 있었다.
 


  “내 환경을 이해해주는 여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여자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땐 그랬지 1
 

 박용운 감독에게 굴욕으로 다가온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가 pos팀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시절의 얘기다. 게임 단 일 이외에는 개인시간이 전혀 없었던 생활을 지속하던 중 갑자기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아 핸드폰을 사는 일은 뒤로 미뤄야 했었다. 그러던 중 예비군 훈련 날짜가 다가왔고 바쁜 일정을 해내기도 벅찬 상황에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불참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핸드폰이 없는 상태라 연락을 받을 수조차 없었다. 훈련소 측에서 그에게 연락이 안 되자 그가 게임과 관련된 곳에 있는 사실을 알아내고 같은 업종에 일하고 있던 팬택의 원정욱 코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당시 아무런 친분도 없었던 원정욱 코치는 그에게 급하게 예비군 훈련 소식을 알려 주었고 그는 덕분에 위기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친해지게 된 두 사람은 종종 그 시절의 얘기를 꺼내 추억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 일에 있어선 늘 원정욱 코치의 놀림감이 되는 박용운 감독. 힘들고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지금의 현실이 그에게는 값지며 행복할 뿐이다.

 
그땐 그랬지 2
 
 질풍노도의 시기에 누구나 방황했던 기억은 있을 것이다. 그 역시 방황의 대표적 행동인 가출 경험이 있었지만 스물 여섯, 청소년기를 한참 지난 청년기의 시작됐다는 점이 독특했다.


 
군대에서 e스포츠의 꿈을 키우며 전역을 하게 된 박용운 감독은 바로 복학을 하지 않고 꿈을 실현하고자 마음 먹는다. 한번 결심한 일에는 죽을 각오를 다해 파고드는 성격이었던 그는 게임에 대한 연구를 1년 여간 한다. 세상과는 단절된 채 그는 그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두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식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잠자코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보다 못한 그의 부모님은 기어이 아들의 컴퓨터를 버리고 만다. 그 길로 그는 스물 여섯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가출을 감행하게 된다.


 
뚜렷한 계획 없이 결심한 가출은 역시 고단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목포의 현대 조선소에서 그는 막노동 일을 했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기구한 사연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틈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을 했고 한여름 동안에는 더위까지 먹는 등 힘든 생활을 버텨야 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는 어느 날, 그는 숙소로 돌아갈 힘이 없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게 된다. 새벽 1시까지 미동 없이 누워 있었다. 누워서 본 여름 밤의 별은 그에게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듯 했다. 그 길로 그는 3개월 동안의 가출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끔 부모님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들의 꿈을 반대했던 과거를 미안해 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마찰이 있었던 시간조차 그에게는 소중하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고 부모 맘 다치게 하고 싶은 자식은 세상에 없다. 그와 그의 부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히딩크처럼만…… 

  그에게 선수 각자의 매력에 대해 얘기해달라는 다소 어려운 부탁을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말을 이었다 

  
  “도재욱 선수는 매우 우직한 편이에요. 지칠 줄 모르는 체력도 가졌고요. 살짝 어린아이 같은 면도 있는데 그게 도재욱 선수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도재욱 선수를 보고 있으면 항상 즐겁고 참 순수한 친구라 생각됩니다
박태민 선수는 자신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하려는 스타일이에요. 항상 역동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가장 기억에 남을 선수로 전상욱 선수를 꼽았다.
 

 “항상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모습이 예뻐요. 끊이지 않은 체력도 좋고 참 정이 많은 친구인 것 같아요. 


  인터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그에게 감독으로서의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평가하기엔 아직 무리라며 30~40점의 낮은 점수를 매겼다. 그러면서 나머지 부분을 앞으로 채워가겠다는 말도 잊지 않고 했다
 


  
“지도자에 의해서 조직되는 조직은 지도자 이상의 것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구성원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팀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결국 팀원들 하나하나가 중요한 거죠.
 


 
 그는 경기에 있어 최선을 다해 지는 것과 최선을 다하지 않고 지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비록 결과로는 진 게임일자라도 선수가 최선을 다했다고 판단되면 그는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모든 선수에게 경기참여의 기회를 주려 한다. 벤치를 줄곧 지켜오던 선수도 그에게는 똑같은 희망이다. 그 희망에게 희망을 꺾고 싶지 않아 사람들의 우려와 같은 목소리에도 그는 소신대로 움직인다. 기회는 기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려져 있던 한 선수의 재능을 발견해내는 또 다른 기회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그의 도박은 그래서 매력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영원한 것은 없듯이 언젠가 우리도 헤어지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만약 그런 날이 오더라도 우리가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고 게이머로서 보낸 시간들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리워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현재의 노력한 흔적들이 두고두고 생각날 최고의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그 추억을 만드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4강신화의 꿈을 이룬 히딩크의 어퍼컷 세레머니처럼 우리에게 어떤 흥분과 감동을 안겨줄지 그가 이끄는 T1의 미래가 기대되는 바이다. 그리고 그 기대의 씨앗이 광안리 행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