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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김택용, 이기는 표정을 지어라

2008.06.25

[포모스=강영훈 기자]김택용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을 보고 싶다



그 어렵다는 MSL 우승 2회, 준우승 1회, 게다가 WWI 우승, IEF우승까지. 2007년 김택용은 가장 빛난 게이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06~07을 지배하며 본좌의 영광을 누리던 마재윤을 꺾는 '혁명'을 이뤄내며 등장한 스타였기 때문에 김택용의 활약이 더욱 빛났던 것도 사실이다. '기적의 혁명가'라는 다소 유치한 별명이 붙었음에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김택용의 플레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굳이 '본좌론'을 꺼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긴 싫지만 역대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프로토스 선배들에게 부족했던 2%를 채워주는 선수가 바로 김택용이 되지 않을까, 드디어 본좌라인에도 최초의 프로토스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팬들이 설레였던 것도 사실이다.

언제인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아마 WWI 우승 직후일 것이다-MBC게임 히어로에 취재를 갔다가 연습실에 혼자 있던 김택용을 만난 적이 있다. 정말 우문이었지만 "너 요즘 왜 이렇게 잘하니?" 라고 묻자 김택용은 "몰라요. 그냥 제가 제일 잘해요"라며 특유의 아스트랄한 웃음을 지었다. 절대 잘난 척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농담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다만 "얘는 진짜로 Aiur행성에서 왔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할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택용의 현주소는 내가 예상했던 Aiur행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을 쓰기 전 김택용의 종족별 최근 10경기 기록을 찾아 봤더니 그 스페셜하다는 김택용의 저그전이 공식전 3승 7패라는 성적표를 받고 있다. 테란전이나 프로토스전 역시 간신히 5할대를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김택용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택용이는 연습할 때 보면 컨트롤이면 컨트롤, 견제면 견제, 물량이면 물량,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택용이 실력이면 바로 우승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니까요"

같은 팀원이자 요즘 한창 잘 나가는 SK텔레콤의 도재욱이 해 준 얘기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얼마 전 김택용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SK텔레콤의 박용운 감독대행은 “김택용의 부진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부진에 빠진 원인은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인한 집중력 저하”라며 "최근 경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스타일 변화를 통해서 트렌드를 선도하던 이전의 스타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집중 조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스포츠계에서 성과를 인정 받고 있는 전문가가 김택용을 이렇게 진단하고 잘 돌봐 준다니 우선 다행이다.  이 판의 스타들이 이렇게 생명주기가 짧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도 김택용의 부활?이 하루 빨리 이루어 지길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에 수십장씩 프로게이머들의 얼굴을 찍어 대는 직업의 특성상 나 역시 김택용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이기는 표정을 지어라"

예전에 한 프로게이머가 "좋았어! 빨간색은 이기는 색!"이라고 말하는 것이 화제가 되서 '이기는 색'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물론 과학적으로 아무 근거도 없는 얘기가 될 수 있겠으나 지는 색이 아닌 이기는 색을 정해 놓고 정말 그 색이 나온다면 기분 좋게 경기를 풀어갈 수 있으니 심리적으로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염보성도 참 대단한 게이머다.

내가 말해주고 싶은 '이기는 표정'은 '이기는 색'과는 조금 다르다. 잘만 이해한다면 이기는 색보다 훨씬 효과를 볼 수 도 있다. 방송경기라는 것이 참 쉬운 게 아니라서 굳이 유명한 문준희(은퇴)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온라인 고수=실제 고수'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판에는  '포스'가 중요하다.

아무리 날고 기는 신예라도 이미 최상급 레벨에 올라 있는 게이머들과 대결하기 전에는 가슴이 더 콩닥콩닥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때 모 감독은 나에게 "우리 모 선수(당연히 본좌라인의 한 축이었던)를 절대로 못 이기는 게이머가 몇 명 있는데 그건 경기 시작하기 전에 그 선수가 우리 OO에게 지고 시작하기 때문이죠"라는 말을 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절대 맞는 말도 아니었다. 특히 김택용이 그 예외의 정점에 있었고-3.3혁명을 떠올려 보라!-현재 그 선수들 중 한명은 절대 못이긴다던 모 선수를 곧잘 이기고 있다.

그런 김택용에게 그만이 가지고 있던 뭔가 특별한 '포스'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된다. 사실 그 '포스를 내뿜던 표정'이 어떤 건지는 기자도 잘 모른다. 그저 감으로 느낄 뿐. 결국 난 그저 그걸 제일 잘 알고 잘 기억하고 있을 김택용이 그 표정을 다시 지어 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바로 2007년 3월 3일의 이 표정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