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2008-03-25 15:33]
수퍼 토스라 불러다오
20살. 참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원대한 꿈을 키워갈 나이다. ‘苦3’이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3년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인이 되는 시점이다. 학생이라는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들은 이러한 일반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다. 요즘 들어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프로게이머들은 20살 이전에 생활 전선에 뛰어든다.
그렇다면 프로게이머들에게 20살이라는 의미는 무얼까. 큰 변화는 없다. 자신의 손으로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정도가 전부다. 빠뜨려서는 안되는 요소가 또 있다. 부모의 동의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는 권리도 생긴다.
올해 20살이 되는 아름다운 청년 SK텔레콤 T1 도재욱을 만났다.
신희승과의 에피소드
도재욱을 추천한 선수는 129호에서 <취중진담>에 나선 이스트로 신희승이다. 신희승은 지난 4일 SK텔레콤과의 친선 축구 게임을 치른 뒤 도재욱에게 술 마시기 시합을 제안했다. 두 팀의 회식 자리에서 옆 자리에 앉아 계속 술잔을 권한 것. 승자는 도재욱이었다. 쉬지 않고 원샷 퍼레이드를 펼친 끝에 도재욱은 걸어서 숙소까지 돌아갔고 신희승은 선후배들의 부축을 받으며 약점을 드러냈다. 신희승은 당일 예정된 <취중진담> 스케줄을 ‘펑크’냈고, 다음 날 낮이 되어서야 출연할 수 있었다.
그날의 시합에 대해 도재욱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희승이와 같이 술을 마실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희승이와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됐고 슬슬 잔을 돌리더라고요. 그래서 마셔줬죠. 좀 약하던데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궁금증이 일어났다. 도대체 신희승과는 어떤 사이일까.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술 마시기 시합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공통 분모가 있지 않을까.
“희승이와는 같은 길드였어요. [WHITE]라는 길드인데요. 아마추어 시절에 몇 번 게임도 같이 했었고 프로게이머가 된 뒤에 서울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길드 모임에서 얼굴을 익혔죠. 제가 팀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을 때 희승이는 주전으로, 전략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서 매우 부러워하던 사이에요. 나이도 같아서 서로 의지하게 됐어요. 제가 고민을 털어 놓으면 희승이가 좋은 말도 해주고 저도 팀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분이 두터워졌어요. 그래서 술 내기 시합도 하게 됐죠.”
슈퍼마켓과 술
신희승과의 술 내기 시합에서 이긴 실력이 궁금했다. 그래서 술자리를 시작할 때 원샷을 몇잔 권해봤다.
술이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기자도 도재욱의 원샷 스피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소주와 맥주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 마시는 ‘소맥’을 한 잔 줬더니 곧바로 빈잔이 되어 돌아왔다. 30분 만에 7~8잔 가량을 비워내는 모습을 보니 ‘주신’ 박카스가 강림한 듯 했다.
도재욱이 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때. 호기심 많은 나이에 친구들과 몰래 구해 마셨단다. 청소년에게 주류 판매가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부모님이 드시다가 남은 술을 들고 나와 친구들과 홀짝거린 것이 시작이었다고. 그러다가 몇 번은 ‘범죄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수퍼마켓에서 몰래 술을 훔치기도 했다고.
“그 당시에는 죄를 지은 줄 모르고 친구들과 재미삼아 훔쳤어요. 그런데 철이 들고 나니 그런 것이 범죄인 줄 알았죠. 지금도 슈퍼마켓에 들러 물건을 사다 보면 죄스러워서 거스름돈을 받지 않아요. 아예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보상해 드리고 싶어요.”
올해로 20살이 된 도재욱은 술을 자유롭게 마실 권리를 얻었다. 연습을 위해 자제하고 있지만 답답할 때면 선배 게이머들에게 술 사달라고 애교를 부릴 때도 있다고.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에도 마실 기회가 있었어요. 워크숍을 가면 사무국 직원이나 성년이 된 선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료들과 함께 마셨어요. 저그나 테란 선수들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프로토스 선수들과 주로 마셔요. 프로게이머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게임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도 듣고, e스포츠가 어떻게 발전해가는지도 듣고요. 술 마시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가 된답니다.”
찍기의 달인
도재욱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후기리그부터다. 박용욱과 김성제가 2군에 내려가면서 공백이 생긴 SK텔레콤의 프로토스 라인을 떠받드는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후기리그에서 10승5패를 기록했고 프로토스전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다. 프로토스전 성적은 9승1패로 승률 90%를 달성했다.
도재욱의 프로토스전을 지켜본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든 게이트웨이에서 병력이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생산력이 좋다고 알려진 박정석, 박지호를 뛰어 넘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찍기의 달인’. 찍기란 병력을 생산한다는 뜻의 은어다.
“인터넷 서핑을 하던 서형석 코치님이 배꼽을 잡고 웃으시면서 한 팬이 그린 만화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찍기의 달인’이라고 부제가 붙은 만화였는데 저를 주제로 한 만화였어요. ‘제 플레이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구나’라고 생각한 계기가 됐어요.”
‘찍기의 달인’이라는 만화의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저그와 테란의 공격에 프로토스의 성지 아이어가 초토화될 위기에 처한다. 프로토스의 제사장들은 박정석과 김택용, 박지호, 윤용태 등 최고 수준의 프로토스를 모두 내세웠지만 번번이 패하고 만다. 그래서 선택한 선수가 도재욱이다. 나무꾼 복장으로 장작을 패던 도재욱에게 내려진 미션은 찍기. 나무 찍던 실력으로 게이트웨이에서 질럿을 찍기 시작한 도재욱은 프로토스의 운명을 구해낸다.
도재욱의 엄청난 생산력의 비결은 무얼까. 도재욱 자신도 모른다고 말한다. 단지 게이트웨이가 보이고 자원이 남아 있으면 필요한 유닛들을 섞어 생산하는 것 뿐이란다.
“제 생산력이 특별한 것 같지는 않아요. 김택용 선수가 우리 팀으로 이적한 뒤에 확인해봤더니 택용이도 유닛 생산력에서 비슷하더라고요. 굳이 다른 프로토스들보다 물량이 많아 보이는 이유를 찾자면 저는 계속해서 공격을 유도하면서 유닛을 소모하는 반면 다른 선수들은 공격보다는 지키자는 플레이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쏟아붓고 나서 다시 생산하니까 시청자들도 주의가 환기되니까 많아 보이는 거죠.”
‘찍기의 달인’ 도재욱의 주특기는 생산력이 아니라 끊임 없는 공격성이다. 그의 공격성은 단지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술도 공격적으로 마시면서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머리가 하얘지는 병?
도재욱과 게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가지 사례가 기억났다. 2006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펼쳐진 과 얼마 전에 끝난 <박카스 스타리그 2008> 송병구와의 4강전이다. 당시 도재욱은 유리한 상황을 맞았으나 역전패를 당하면서 좋은 기회를 날려 버렸다.
우선 전상욱과 맞대결을 펼쳤던 2006년 이야기부터 보따리를 풀었다. “상욱이 형과의 경기를 논하기 전에 이재훈 선수 경기를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그 때 SK텔레콤 T1의 온라인 연습생 신분이었고 아마추어 대회에서 상위 입상해 프로게이머와 경기할 기회를 처음 가졌어요. 얼마나 떨리던지 머리 속에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첫 세트부터 꼬이더니 허무하게 진 거에요.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서 코치님이 오시더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조언해주셨죠. 그 때부터 제 마음대로 했는데 역전승한 거에요.”
그 날의 긴장감이 다시 떠오르는 듯 목을 축인다. 물론 소맥이다.
“상욱이 형과의 대결은 정말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첫 판을 이겼거든요. 그런데 다음 세트부터는 집중이 되질 않았어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다시 손을 떨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3세트까지 갔는데 제가 먼저 200을 채웠어요. 캐리어도 4기나 있었고요. 그런데 상욱이 형의 ‘만만디(천천히 병력을 쌓아가며 자리를 잡는다는 뜻) 전략’에 당해서 떨어졌죠. 만약 그 때 이겼다면 아마추어 신드롭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진짜 아까웠어요.
입이 풀린 도재욱은 곧바로 송병구와의 4강전 이야기로 넘어갔다.
“송병구 선수와의 세 번째 세트도 평생 잊지 못할 거에요. 모든 분들이 생각하듯이 제가 ‘삽질’해서 진 경기잖아요. 첫 전투에서 이기고 조이기에도 성공했는데 조급함 때문에 졌죠. 그 때도 확장 가져가면서 천천히 풀어 나갔으면 이겼을텐데 제 병이 도진 거에요. 유리한 상황만 되면 머리가 하얘지는 병이죠. 어떻게 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반대에서 적극적인 지지자로
도재욱이 프로게이머가 되는 길도 다른 선수들 마냥 험난했다.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고 6개월 가량 반항의 시기를 겪은 끝에 항복(?)을 받아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공부에 뜻을 두지 못하고 게임을 선택했다. 학교에는 조퇴한다고 이야기하고 부모님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처럼 어머니에게 걸려 호되게 혼났다.
“그 때부터 반항하기 시작했죠. 제가 공부를 해서 성공할 것이라고는 저조차도 포기했어요. 그런데 프로게이머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흥미도 있고 자신도 있었죠. 반년을 싸운 끝에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자퇴했어요. 팀에 들어온 뒤 검정고시를 봐서 졸업증을 얻었어요.”
반대하던 부모님들도 요즘은 도재욱의 팬이 되어 홍보 대사가 되셨다. 도재욱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근처 음식점을 ‘점령’하고 친구분들을 불러 함께 응원하신다고. 그 덕분에 자주가는 음식점은 야구나 농구를 켜는 날보다 프로리그와 스타리그를 켜는 날수가 더 많단다.
“아버지의 태도가 정말 많이 바뀌셨어요. 게임이라면 치를 떠셨는데 제가 자주 나오고 성적도 내다 보니까 박사가 되셨습니다. 이제는 저보고 “송병구처럼 캐리어를 일찍 생산하면 더 쉽게 풀릴 것 같다”면서 조언도 하신다니까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수퍼 토스의 꿈
도재욱이 최근 맹활약하자 팬들 사이에서도 별명 짓기가 유행이 됐다. ‘바바리안’이라는 단어에 도재욱의 성을 붙여 ‘도바리안’이라고 붙이기도 하고 경기 스타일을 따라 ‘터프 재욱’이라는 것도 생겼다. 그렇지만 도재욱이 원하는 별명은 따로 있다. ‘수퍼 토스’가 바로 그것.
‘수퍼 토스’는 매우 중의적인 별명이다. SK텔레콤 T1에 입단할 때 도재욱의 꿈은 ‘수퍼마켓 사장’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돈을 벌어 가게를 내는 것이 목표였다. 또 중학교 때 술을 훔쳤던 것에 대한 미안함도 담겨 있다. 세 번째 뜻은 ‘수퍼맨’처럼 대단한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목표도 내포
돼 있다.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면 ‘수퍼 토스’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지만 이 별명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 미래에 대한 꿈까지 모두 담겨 있으니까요. 팬 여러분들이 지어주신 아름다운 별명도 좋지만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수퍼 토스’라 불리고 싶어요.”
‘블루스톰의 달인’ 등장하세요
SK텔레콤 T1 도재욱은 다음 주자로 KTF 매직엔스 배병우를 지명했다. [WHITE] 길드 출신으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친분을 쌓은 두 선수는 비슷한 시기에 프로게이머가 됐고 도재욱은 프로토스전에서, 배병우는 <블루스톰>이라는 맵에서 맹활약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블루스톰>에서 맞붙은 대결에서는 배병우가 승리한 적도 있다.
도재욱은 “배병우 선수가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아서 ‘리틀 홍진호’라 불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배병우 선수가 홍진호 선수를 넘어설 자질이 충분하기에 추천한다”고 이유를 말했다.
[esFORCE 130호] SK텔레콤 T1 도재욱 “짧지만 굴곡 많은 인생사”
2008.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