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끈끈한 부자의 정' 박용욱 부자(父子)의 첫 술자리

2006.10.13

추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족이다. 멀리 떨어져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푼다. '부산 사나이' 박용욱에게 이번 추석은 더욱 특별했다. 아버지와 처음으로 둘만의 술자리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늦은 밤, 부산 광안리에서 박용욱 부자를 만났다.

◆첫 술자리, 그 이유는?
사실 박용욱 부자가 그동안 단 둘이서 단 한번도 술자리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의외다. 박용욱이 술을 못할 나이도 아닌데다 고향에 한 달에 한 번씩 성실하게 내려왔기 때문이다. 박용욱의 아버지인 박동율씨는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나와 (박)용욱이가 활동 시간대가 다르다보니 술 자리를 가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프로게이머가 그렇듯이 늦은 저녁이 활동 시간대인데 내가 직장에 다녀오면 대부분 밖에 나가고 없더군요. 그러다보니 둘이서 술을 마실 기회가 없었습니다."

박용욱은 취미생활이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아버지와 같이 등산했을 때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며 서로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사이가 더 돈독해졌습니다."

박동율씨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틈틈히 소주를 드셨다. 아들과 첫 술자리다보니 기분이 좋으신 듯 하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박용욱은 "아버지가 그렇게 술을 잘 드시는 편은 아닌데."라고 걱정스러운듯 말을 하지만 박동율씨는 "아버지가 그동안 주량이 좀 늘었다"며 아들을 안심시켰다.

아들의 걱정에 아버지는 선물로 화답했다. 상추로 큼지막하게 쌈을 싸서 아들에게 안겨준 것이다. "아버지가 주는 쌈이다." 박동율씨는 자신이 만든 쌈을 직접 박용욱에게 먹여줬다.

◆아버지가 본 박용욱
현재 '프로게이머' 박용욱은 집안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을 리 만무하다. 여기에 대해 박동율씨는 할 말이 많은 듯 이야기를 쏟아냈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별탈없이 학교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에 빠져있더군요. 공부도 잘했던 아이가 갑작스럽게 게임에 빠지게 돼 많이 놀랐습니다."

공부도 잘했던 아들이 게임에 빠지게 되자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들었으리라. 박동율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박용욱과의 전쟁에 대해 말했다. "직접 하교길에 나가 용욱이가 어디 가지 못하도록 감시했는데도 기가 막히게 빠져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욱이의 주관이 정말 뚜렷했던 것 같습니다"

자식 이기는 아버지 없다고 했던가. 박용욱 부자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박동율씨도 아들의 의지를 결국 꺾지 못했다. "몇 달 동안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말렸습니다. 혼도 내고 때리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이 기울었더군요. 결국 용욱이의 마음을 굽히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박용욱을 인정하게 된 계기는 언제였을까. 크게 두 가지였다. 바로 오리온의 창단과 마이큐브 우승이다. "오리온 시절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다가 숙소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당시 분당에 숙소가 있었죠. 그 곳에서 주 훈 감독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당시 박동율씨는 아들을 강제로 끌고 내려가려는 생각이었단다. 프로게이머가 단지 아들의 반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박용욱을 믿어보게 됐다고 한다. "주 감독이 믿음을 줬습니다. 앞으로 e스포츠가 발전할 것이라며 용욱이를 믿어보라고요. 사실 긴가민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들이 가려는 길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게 됐습니다."

2003년 11월,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벌어진 마이큐브 스타리그 결승전에서 박용욱이 우승을 차지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적극 지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시 결승전 현장을 보면서 e스포츠의 가능성에 대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 용욱이가 우승까지 차지했으니 더 말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용욱이를 지지한다고 하자 오히려 용욱이 어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그렇게 반대하는 사람이 갑자기 돌아섰다고요(웃음)."

◆아들 자랑은 팔불출?
아들이 유명해지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당연한 심정이다. 박용욱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님에게 자식 자랑은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답하셨다. "특별히 용욱이를 자랑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에 대해 박용욱이 진실을 말했다. "마이큐브 스타리그 우승한 뒤로 내려올 때마다 아버지가 저녁 약속을 잡아놓으시더라고요. 매번 '저녁 약속 잡았다'라고 말을 하셔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꼬박꼬박 참석했어요. 지금은 만날만한 분을 다 만나서 약속을 안 잡으시더라고요."

아마 자신의 입으로 자식 자랑하기가 부끄러우셨나 보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하지만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용욱이 아버님, 용욱이는 충분히 자랑해도 될 만한 아들입니다. 마음껏 자랑하세요!"

◆박용욱이 본 아버지
아버지에 대해 박용욱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원망도 했을 법 하지만 박용욱은 아버지를 다 이해한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 때는 반항이 심했을 때죠. 당시에 집안의 반대에 가출도 했었습니다"

박동율씨가 박용욱의 말을 받아 뒷 얘기를 들려줬다. "게임을 계속 하려거든 집에서 나가라고 했더니 진짜 나가더라고요, 걱정이 되서 잠이 안 왔습니다. 확실히 용욱이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술을 한 잔 들이킨 박동율씨는 아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 때 아버지가 밉더냐?"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박용욱은 "그 때는 어렸을 때인데 뭘 알겠어요"라고 답했다.

박용욱은 아버지에 대해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 평했다. 또 자신에 대해 끔찍하게 아껴주신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때면 말 수를 줄이십니다. 최대한 저에게 좋은 이야기만 해 주시려고 하시죠. 정말 저를 많이 생각해 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과음하지 마라
박동율씨는 박용욱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술이다. 과음은 절대 안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술을 많이 먹게 되면 실수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술에 대한 절제가 안되면 큰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sFORCE에 '남윤성의 취중진담'이라는 코너가 있다. 이 취중진담의 첫 주자는 사실 박용욱이었다. 첫 주자로 박용욱이 적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섭외 초기에는 이야기가 잘 풀렸지만 술 이야기가 나오자 박용욱은 정색하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버지가 과음하지 말라고 했다며 결국 출연을 고사했다.

"다른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용욱이가 많은 사람들과 술을 먹게 되면 자연스럽게 많이 먹을 가능성이 높고 그러다보면 자칫 사고라도 날까봐 그랬던 것이죠. 잘 알아서 하는 아이니 큰 문제 있겠습니까."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버지의 자식 걱정은 끝이 없다.

◆뜻깊은 부자의 첫 술자리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박용욱 부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쉬움이 남는 듯 했다. 하지만 술자리가 어디 이번 뿐이겠는가.

술기운이 어느 정도 오른 박동율씨는 박용욱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이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용욱이요? 지금은 흐뭇하죠. 아주 흐뭇합니다."

아버지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박용욱은 말을 이었다. "지금뿐 아니라 10년 뒤에도 계속 흐뭇하게 해 드려야죠." 두 부자의 눈시울이 어느덧 붉어졌다.


출처 - 파이터포럼 www.fighterforum.com 정재욱 기자 pocari@esforce.net